[영국 생활] 영국 오기 전 알았으면 좋았을 것 들
'외국'이라는 존재는 어릴 때부터 TV 속에서만 봤기에 내겐 항상 신비스럽운 동경의 대상이었다. 대학에 진학하고 일본어를 전공하면서 일본에서 한 한기 교환학생을 한 적이 있는데 이 짧은 기간 해외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수업하고 교류하면서 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낸 나는 유럽이나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더욱 궁금해졌다.
직장 생활 시작 후, 해외 계열사의 동료들과 같이 대화하고 미팅하며 그들의 젠틀함과 여유로운 모습에 이들은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어떤 교육을 받았을까? 얘네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까? 등등 .. 그들이 사는 곳에서 나도 살아보고 싶음 맘이 강해졌다.
내 맘 속 어디 언저리에 잠자고 있던 외국에 대한 강한 동경이 다시 나온 것이다.
그러다 신랑을 만나 결혼하고 한국, 영국 중 어디서 살까를 의논하다가 항상 동경하던 유럽이라는 나라에서 꼭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나의 강한 열망으로 영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늦은 나이에 외국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부담감도 컸지만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자는 쪽을 선택했다.
영국은 여행, 단기 출장으로 몇 번 와 본 적 있지만 장기 체류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영국 현실에 대해선 그닥 잘 몰랐다. 아니 현실 따윈 안중에도 없었고 그냥 동경하던 유럽에서 산다는 생각에 마냥 좋아했던 거 같다.
이곳에 산지 만 8년이 된 지금은, 그때 영국 오기 전 현실에 대해 미리 알았다면 지금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아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한다.
비가 많이 오는 영국?... 해 보기도 힘든 영국
영국에 비가 많이 온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겠지.. 근데 사실을 인지하는 것과 그걸 몸소 체험하는 건 완전 다르다.
'비가 많이 온다고? 음~ 빗소리 들으면서 커피 한잔하는 거. 너무 낭만 있잖아!'
라고 얘기한다면... X소리다..
영국은 비가 진짜 너무 자주 오고, 하루에도 세네 번 왔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얄미운 날씨를 가졌다. 특히 여름을 제외하면 나머지 세계절의 비 오는 빈도는 말도 못 함.
그럼 비가 안 오는 날은 괜찮을까?
영국은 비가 안 오지만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어둑어둑하고 먹구름 잔뜩 끼인 날이 잦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왜 영국이 TV에 나올 때마다회색 잿빛의 흐릿한 날씨와 함께 소개됐는지 이해가 감.
겨울이면 더욱 더 해 보는게 더 힘들다. 위도가 높은 탓에 오후 3시면 어둑어둑해 지면서 다음날 오전 9시는 돼야 해를 볼 수 있어 밤이 굉장히 길다.
이런 날씨는 내 기분과 감정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처음 1년은 여전히 여행한다는 기분으로 살았고, 그 후 2년은 집을 사서 DIY 하느라 집 꾸미기에 바빠서 그럭저럭 살만했다.
현타는 4년 차부터 오기 시작했는데, 영국살이, 결혼생활, 직장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단조로운 삶이 지속되니 날씨의 영향이 더욱 크게 왔다.
비가 추적추적 오고 날이 궂으면 아침부터 내 기분도 다운되고 그냥 축 쳐진다. 시꺼먼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어서 불을 켜도 어둑어둑하고 밖은 회색 잿빛에 스산한 기운마저 돌아, 나가고 싶은 욕구가 없어진다.
더욱이 나는 런던 같은 대도시가 아닌 작은 마을의 주택단지에 사는데 사방은 나무와 풀, 숲이 우거져있고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는 자연과 함께 어울려 사는 동네에 있다.
자연 공간이 부족한 한국에 살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좋은지 알아야 하지만 싱그러운 자연의 감사함은 길어야 한 달이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다들 공감하듯이 아무리 조용하고 평온한 자연이라도 한 달, 아니 2주면 그 풍경도 지겨워지는 법. 더욱이 매일같이 비 오는 풍경의 자연이라면 노땡큐다.
그럼 대도시로 이사 가는 건 어때? 하지만... 이사라는 게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다. 더욱이 이미 안정된 직장이 엮어 있거나 경제적 문제, 치안 문제, 시댁 가족상황 등을 고려하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님.
'혹시 내가 불평불만이 넘 많은 거 아닌가' 스스로 반성하며 날씨 이따위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기분을 Up 시키려 많은 노력도 해봤지만 5년 지난 지금까지 날씨로 인한 감정기복은 여전함.
병원이요? 흠... 그냥 참을게요
"영국은 의료 선진국으로 기본적으로 모든 의료비가 공짜이고, 이는 관광객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런 메리트로 영국을 선택하는 이민자가 꽤 많을 정도이다"
이게 내가 영국 오기 전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의료에 있어선 차별 없이 누구나 공평하게 혜택을 받는다니 아주 대단한 선진국이야...
라고 생각했던 내가 참 순진했다.
NHS 산하 병원은 의료비가 공짜이지만 병원 진료를 받기는 상당히 쉽지 않다. 우선 감기, 몸살로 인한 진료는 당연 안 받고,중증이 아니거나 웬만큼 아프지 않는 걸로는 장기 대기를 해야 한다.
어렵사리 GP와 연락이 되거나 응급실에서 전문의를 만나더라도 약국서 파는 약 먹고 집에서 쉬어라는 답변만 들을 뿐..
주변에서 이런 얘기를 수도 없이 듣고, 나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웬만큼 이상 증세가 없으면 병원 갈 생각은 나도 아예 안 한다. 심한 감기몸살에 걸려 침대신세만 지더라도 약국 약만 먹고 계속 집에서 쉬고, 칼에 손가락을 베여 출혈이 많아 몇 초간 정신을 잃고 깨어나도 손가락이 잘린 게 아니니 그냥 집에서 지혈만 했다. 응급실 가면 3-4시간 대기탈 걸 알기에 그냥 집에서 쉬는 게 효율적이겠다고 생각했음. 출산 후 얼굴에 커다란 사마귀가 생겨 점점 커지는 걸 봐도 영국 병원에선 아무것도 안 해줄 걸 알기에 2년을 기다렸다 한국에서 3분 만에 제거하고 왔다.
영국 병원은 긴급이나 아이들과 관련 있을 때에는 그 서비스가 빛을 발하긴 한다. 장기 대기가 유명한 이유는 항상 중증 환자 우선, 혹은 어린아이 우선이기에 이에 해당되지 않으면 뒤로 계속 밀린다.
이게 가장 맞는 방법이긴 하지만 병원 문턱이 매우 낮았던 한국 병원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 영국에서의 병원은 답답할 때가 많다.
병원 시스템도 한국 병원과는 많이 다른데 항상 최첨단 장비와 빠른 서비스로 회전율을 높이는 한국과는 달리 낙후된 의료 장비, 오래된 건물 시설, 그리고 여전히 레터로 진료 일정을 알리는 방법이 익숙지 않다.
런던에는 레터대신 앱으로 하는 병원도 있다고 하던데 내가 사는 지역 병원은 아직도 레터 발송을 주로 함.
장기 대기가 싫고 빠른 서비스를 받고 싶으면 개인 병원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싸기에 간단한 시술 외에는 웬만하면 갈 수가 없다.
나는 아직 젊은 편이라 병원 갈 일이 많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여기저기 아프면 어떡할지가 걱정이다. 아픈 걸 참는 데에 익숙지 않은 나는 작은 두통이나 심한 감기가 아니더라도 약국 약을 먹고 아픔을 없애지만 약국 약으로 해결되지 않는 병에 걸리면 내 인내심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영국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런 체제에 익숙해서 병원과 관련해선 인내심이 많고 병원 혹은 약의 도움 없이 그냥 쌩으로 견디는 사람도 꽤 있더라. 우리 아버님, 신랑, 그리고 동료들 몇몇은 약을 전혀 신뢰하지 않고 그냥 자연 치유될 때까지 참는다.
지난 몇 년간 영국을 떠난 한국 사람들을 많이 봐 왔는데 대부분의 이유가 위에 두 가지에 맛없는 음식, 모든 게 느린 시스템, 너무 심심한 나라 등이 그 이유였다.
맛없는 음식은 인정하지만 그나마 예전에 비해 한국 식재료 접근성이 높아진 데에 감사함을 느껴 이건 어느 정도 절충하며 살아가고 있다.
느려터진 행정은 이미 알고 있어고, 대한민국 외에는 어딜 가도 대부분 마찬가지라 그냥 견디고 있음.
너무 심심한 나라는 사실 현재까지 불만이긴 한데 영국 오기 전에 이곳의 사정을 미리 알았더라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아닌 다른 곳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런던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집 근처에 여러 상점이나 카페, 레스토랑,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에 정착을 했다면 지금처럼 따분해하지는 않았을 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로 돌아가 다시 영국에서 살 거냐고 물어본다면 아마 나는 'YES'라고 얘기할 거 같다. 다만 위에 언급했듯이 사람이 북적북적하고 인구 유동이 많은 도시로 정착한다는 조건하에다. 영국의 안 좋은 점보다 좋은 점이 더 많고, 더욱이 아이가 있다면 나를 희생하더라도 아이를 위해 영국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신혼을 즐기고 아이를 낳고, 아이가 학교 들어가기 1년 전부터 영국에서 살면 좀 덜 억울할 거 같다. 난 아이 없이 6년을 영국에서 내 발등 찍고 살았고, 지금은 육아하느라 바빠져서 덜 따분한데 '자부타임'이 있을 때마다 신나게 놀 사람, 놀 곳이 많이 없어 매번 아쉬움. 하지만 모든게 완벽한 나라는 없고, 선택할 수 있다는 상황에 감사하며 살아야겠지.
다음엔 영국이 좋은 점도 기록해 봐야겠다.